[편집자말]제주다크투어는 지난해 11월 제주도 내 다크투어 유적지 100곳을 대상으로 안내판 내용을 분석하고 관리 상태를 확인하는 활동을 펼치고 이에 대한 결과를 <유적지 안내판 조사보고서>로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고 제주도의회 행정사무 감사에서도 주요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당시 보고서를 통해 지적한 사항들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주다크투어가 다시 현장을 찾았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지난 8월 3일 서귀포 표선지역 제주4·3 유적지를 답사했습니다.
이번에 찾아간 유적지는 표선지역 최대 학살터인 한모살과 버들못이라는 곳입니다.
과연 현재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와 우려를 갖고 다시 현장을 찾았습니다.
표선백사장은 매해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제주의 대표적인 해변입니다. 인근에는 유채꽃 밭이 있어서 봄에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하는데요. 이 일대는 흔히 ‘한모살’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한모살은 제주말로 ‘많다’, ‘크다’, ‘넓다’의 의미인 ‘한’이라는 말과 ‘모래’를 뜻하는 ‘모살’이 합쳐진 지명입니다. 그러나 이 일대는 73년 전 제주4·3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군에 의해 민간인이 학살되었던 죽음의 공간이었습니다.
현재 표선도서관 인근 공터가 한모살인데요. 당시 이 일대는 모래밭이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해수욕장으로 바뀐 바로 근처 표선해변 모래밭에서도 학살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학살의 광풍이 최고조에 달했던 1948년 12월 18일과 19일에는 약 150여 명의 토산리 주민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희생되었습니다. 희생자 대부분 18~40세 사이의 창창한 젊은 남성들이었습니다. 당시 200호 가량이 모여 살던 토산리는 이날 이후 젊은 남자가 없는 마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집단학살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인 12월 17일에는 세화리 청년 16명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청년들은 토벌대의 '토벌 명령'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당시에는 민보단 등으로 토벌대가 민간인을 동원해 작전을 펼치는 일이 잦았습니다. 20~30대 청년들은 도시락까지 싸 들고 집을 나섰으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2연대 군인 1개 소대가 주둔하던 표선면사무소였습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하루 정도 억류되었다가 표선백사장으로 끌려가 총살되었습니다. 이 일 역시 아직까지도 어떤 이유로 학살이 자행됐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 묻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지난 답사 때보다 훼손된 구석은 없었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나 음성변환용코드가 부재했습니다. 또 외국어로 된 안내문이 없어 외국인이 방문했을 경우 유적지와 관련한 내용을 알기 어렵습니다.
한모살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버들못에도 다녀왔습니다.
버들못은 1948년 12월 22일,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됐던 가시리 주민들 중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된 76명이 총살된 곳입니다. 이날 희생자들의 주검은 흙으로 덮어놓고 1년 정도 방치됐다가 가시리가 재건되면서 유족들이 시신들을 하나 둘씩 찾아갔다고 합니다.
버들못은 개인 사유지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4·3 당시 학살터였다는 걸 알릴 수 있는 안내판을 세워야 하며,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음성변환용코드나 점자 안내판도 같이 설치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이동약자 접근권이 보장되도록 접근이 가능한 공간에 추가 안내판을 설치해야 할 것입니다.
지적했던 내용들이 하루빨리 개선될 수 있도록 유적지 관리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유적지에 대한 세밀한 관리가 제주4·3을 더욱 살아있는 역사로 만드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앞으로도 꾸준히 유적지 답사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