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말]제주다크투어는 지난해 11월 제주도 내 다크투어 유적지 100곳을 대상으로 안내판 내용을 분석하고 관리 상태를 확인하는 활동을 펼치고 이에 대한 결과를 <유적지 안내판 조사보고서>로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고 제주도의회 행정사무 감사에서도 주요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보고서 발간 5개월이 지난 현재 당시 보고서를 통해 지적한 사항들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주다크투어가 다시 현장을 찾았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지난 4월 20일 제주시 애월지역 다크투어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제주지역 다크투어 유적지 100곳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는데요. 애월지역은 제주4·3의 대표적인 유적지들이 있고, 최근 수년간 각광을 받고 있는 관광지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인 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다시쓰는 제주 100년의 역사> 보고서 바로가기 >>
이번에는 당시 지적 사항이 개선되었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위치한 영모원은 항일운동가, 4·3희생자, 한국전쟁 전후 전몰 호국영령을 한자리에 모신 추모공간입니다. 제주도 내 다크투어 유적지 중 대표적인 화해와 상생의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작년 다크투어 유적지 안내판 조사 당시 지적했던 사항 중 개선된 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계단 아래에 있는 안내판(표지석)은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지만, 계단 위에 있는 안내판(표지석)은 경사로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접근이 불가합니다. 경사로를 추가해 이동약자의 접근성을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유적지 안내판에 외국어로 된 안내문이 없어서 외국인이 방문했을 경우 유적지와 관련한 내용을 알기 어려운 부분도 당시 지적사항 중 하나였는데요. 애월지역은 제주도의 대표 관광명소 중 한 곳으로 내국인뿐만 아니라 해외 여행객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외국어 안내문을 추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아쉬운 점은 추모 대상 각각에 대한 내용은 기술되어 있지만, 이들을 한 자리에 모시고 추모공간을 조성한 의미와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있었으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두 번째로 둘러본 유적지는 빌레못굴입니다.
빌레못굴은 제주4·3 당시 마을 주민들의 은신처이자 학살터였습니다.
빌레못굴은 1949년 1월 16일 굴속에 숨어있던 장전리, 납읍리, 상귀리 등 인근 주민 다수가 토벌대에 의해 집단적으로 총살된 장소입니다. 또 11,749m의 제주도 내 최장동굴로 지질학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가지고 있어 천연기념물 342호로 지정돼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유적지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초행길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죠. 지난번 유적지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지적하며 갈림길 등에 이정표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었는데요. 아직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상태였습니다.
빌레못굴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찾아오시는 분들이 유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도로변에 4·3유적지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해야 할 것입니다.
길을 따라 쭉 들어가다 보면 세 갈래 길이 나옵니다. 특히 이 지점에 유적지의 위치를 표시하는 안내판이 꼭 필요합니다. 아울러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는 비포장길이어서 이동약자의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이 부분도 개선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작년 조사 당시 금이 가 있던 안내판 역시 교체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안내판에 기재되어 있는 빌레못굴의 주소는 잘못된 주소로 올바른 주소가 표기된 내용으로 안내판을 교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학술조사 중이라 잠금장치로 굳게 잠겨있던 동굴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입구를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동굴 입구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좁았습니다. 돌 위에 쭈그려 앉아 당시 굴속으로 은신해야만 했던 마을 주민들을 생각해 봅니다. 한 줄기 빛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곧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던 걸까요?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비학동산입니다. 현재는 학원동민회관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4·3 당시 팽나무에 임산부를 매달아 철창으로 찌르는 등 토벌대가 잔인무도한 학살을 자행했던 곳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이 사건이 알려져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기억을 지우기 위해 팽나무를 베어버리고 현재의 학원동민회관을 세웠다고 합니다.
현재 동민회관이 세워진 자리에는 4·3유적지 안내판 대신 회관건립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4·3 당시 참혹한 학살극이 벌어진 현장이지만 이 자리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4·3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당시의 기억이 전승될 수 있도록 현장을 보존하고 안내판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당시의 처참한 기억을 잊기 위해 깊게 박힌 팽나무를 응어리 베듯 베어야만 했던 주민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헤아려 봅니다. 역사의 현장을 없앤다고 해서 아픈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픈 이야기를 되뇌고 되뇌며 후세에 전하는 것이야 말로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지름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번 답사를 통해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