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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말]제주다크투어는 지난해 11월 제주도 내 다크투어 유적지 100곳을 대상으로 안내판 내용을 분석하고 관리 상태를 확인하는 활동을 펼치고 이에 대한 결과를 <유적지 안내판 조사보고서>로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고 제주도의회 행정사무 감사에서도 주요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보고서 발간 5개월이 지난 현재 당시 보고서를 통해 지적한 사항들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주다크투어가 다시 현장을 찾았습니다.

서귀포 남원읍에는 세 개의 무덤이 있습니다. 단독선거, 단독정부에 반대하며 무장투쟁을 했던 인민유격대원(무장대)들의 시신이 방치됐던 송령이골, 자국 군대에 의해 학살된 주민들이 묻힌 현의합장묘, 그리고 충혼묘지. 세 무덤을 통해 제주4·3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지난 5월 11일 서귀포시 남원지역 다크투어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제주지역 다크투어 유적지 100곳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는데요. 남원지역은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국가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제주의 아픔은 제대로 치유되지도 기억되지도 못한 곳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다시쓰는 제주 100년의 역사> 보고서 바로가기 >>

이번에는 당시 지적 사항이 개선되었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봤습니다.

남원읍 충혼묘지 현황 (2021년 5월 11일 촬영)
남원읍 충혼묘지 현황 (2021년 5월 11일 촬영)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위치한 남원읍 충혼묘지는 한국전쟁 및 베트남 전쟁 당시 전사한 군인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또 제주4·3 당시 인민유격대와 토벌대 간의 벌어진 ‘의귀전투’에서 전사한 군인을 비롯해 인민유격대의 습격으로 숨진 경찰과 민보단원 등 민간인들의 추모비등 총 147기가 모셔져 있습니다.

남원읍 충혼묘지 가운데 세워져 있는 충혼탑 (2021년 5월 11일 촬영)
남원읍 충혼묘지 가운데 세워져 있는 충혼탑 (2021년 5월 11일 촬영)
토벌대와 인민유격대의 전투 중 사망한 군인 4명의 충혼비 및 민보단원들의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2021년 5월 11일 촬영)
토벌대와 인민유격대의 전투 중 사망한 군인 4명의 충혼비 및 민보단원들의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2021년 5월 11일 촬영)

충혼묘지 가운데 기다란 충혼탑 우측 편에는 1949년 1월 12일 새벽 의귀국민학교에서 일어난 토벌대와 인민유격대의 전투 중 사망한 군인 4명의 충혼비를 비롯해, 보초를 서다 인민유격대에 의해 희생 된 민보단원들의 추모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전체 안내판에는 4·3 관련 내용은 없으나 개별 비석의 경우 기술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곳은 ‘의귀 전투’로 불리는 토벌대와 인민유격대 간의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 4명의 추모비가 있는 장소입니다. 양측 전투 전사자, 전투 이후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희생자가 ‘현의합장묘’, ‘충혼묘지’, ‘송령이골’ 등 한 지역 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추모되고 있어 4·3 당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죽은 사람들이 각각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안내판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따로 기술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안내판을 세워야 하며,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음성변환용코드나 점자 안내판도 같이 설치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이동약자 접근권이 보장되도록 경사로를 추가 설치하거나 접근이 가능한 공간에 추가 안내판을 설치해야 할 것입니다.

도로 옆 안내판 하나 없는 사리물궤 입구 (2021년 5월 11일 촬영)
도로 옆 안내판 하나 없는 사리물궤 입구 (2021년 5월 11일 촬영)
사리물궤 (2021년 5월 11일 촬영)
사리물궤 (2021년 5월 11일 촬영)

충혼묘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리물궤에 들렀습니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 옆 안내판 하나 없는 이곳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풀숲 사이를 헤쳐야만 나오는 이곳은 4·3 당시 수망리 주민들이 숨어 살았던 곳입니다. 하천 변에 있는 이 곳 사리물궤는 마을에서 비교적 가깝고, 하천 주변으로 크고 작은 궤가 산재해 있어서 주민들이 숨어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합니다. 11월 29일 토벌대에 의해 이곳 사리물궤가 발각되어 이곳에 숨어 있던 주민 11명이 현장에서 희생당하기도 했습니다.

사리물궤로 들어가는 입구. 풀숲에 가려져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2021년 5월 11일 촬영)
사리물궤로 들어가는 입구. 풀숲에 가려져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2021년 5월 11일 촬영)

현재 이곳은 4·3 당시 유적지였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입구에 4·3 당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담긴 안내판을 세워 이곳이 4·3유적지임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현의합장묘 신묘역. 세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
현의합장묘 신묘역. 세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

현의합장묘 신묘역에도 들렀습니다. 이곳은 1949년 1월 12일 의귀국민학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 의해 학살된 주민들의 유해를 안장한 묘역입니다. 이곳에 모셔진 유해는 원래 현의합장묘 구묘역(남원읍 의귀리 765-7)에 안장되었으나 2003년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해 발굴 및 추도식을 갖고 현재의 신묘역으로 안장되었습니다.

현의합장묘 구묘역 현재 모습. (2021년 5월 11일 촬영)
현의합장묘 구묘역 현재 모습. (2021년 5월 11일 촬영)
현의합장묘 구묘역 현재 모습. (2021년 5월 11일 촬영)
현의합장묘 구묘역 현재 모습. (2021년 5월 11일 촬영)

당시 희생된 주민들의 시신은 몇 개월 간 방치되었습니다. 유족들은 그 시신을 찾지도 못하고 있다가 1년 후인 1950년 마을 재건 때 경찰의 눈을 피해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후 경찰의 명령을 받은 민보단은 성안에 있는 공터에 시신들을 옮겨와 세 개의 구덩이를 파고 매장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현의합장묘(구묘역)이었습니다.

신묘역으로 옮겨간 뒤에도 시신을 확인할 길은 없어 3개의 봉분에 함께 모셔졌지만 유족들의 관리로 벌초도 잘 되어있고 현의합장묘 내용을 알리는 전시관도 옆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현의합장묘(신묘역) 안내판 시트지가 교체되어 내용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5월 11일 촬영)
현의합장묘(신묘역) 안내판 시트지가 교체되어 내용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5월 11일 촬영)

2020년 9월, 다크투어 유적지 안내판 조사 당시 현의합장묘 안내판 표면에 균열이 있어 훼손되기 전에 보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었는데요. 이 부분은 안내판 시트지 교체를 통해 개선되어있었습니다. 이 외에 지적했던,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점자 안내나 음성변환용코드는 여전히 부재했고, 묘역 안쪽으로의 이동약자 접근 역시도 어려웠습니다.

송령이골 전경
송령이골 전경
2004년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세운 표지판 (2021년 5월 11일 촬영)
2004년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세운 표지판 (2021년 5월 11일 촬영)

현의합장묘(신묘역)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는 송령이골에도 다녀왔습니다. 1949년 1월 12일 의귀국민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인민유격대 50여 명의 시신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가 근처 송령이골에 방치되었습니다. 최근까지도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었다가 2004년, 도법스님을 단장으로 하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이곳을 방문해 표지판을 세우고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이후 매년 8월 15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송령이골 벌초를 함께 합니다. 2018년부터 제주다크투어도 송령이골 벌초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의해 영웅 대접을 받으며 잘 정비되어 만들어진 남원읍 충혼묘지, 토벌대에 학살당한 희생자들이 유족들과 관계기관이 함께 새 묘역 부지를 마련하여 시신을 안장한 현의합장묘, 그리고 국민학교 뒷밭에 흙만 덮인 채로 방치되었다가 토벌대의 지시에 의해 지금의 송령이골로 매장된 무장대(인민유격대) 시신들. 제주4·3이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을 마주하는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제주4·3특별법이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어떤 이는 ‘진정한 봄이 왔다’, ‘우리는 해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늘진 곳이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바로 이 장소가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주4·3이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길로 가려면 이곳 송령이골에 묻혀있는 인민유격대의 죽음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작년 9월 유적지 안내판 조사 당시 지적했던 내용들 중 아쉽게도 개선된 점은 없었습니다.

송령이골 역시도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점자 안내나 음성변환용코드가 부재했습니다. 이동약자의 접근 또한 어려웠고, 안내판 오탈자나 관리 상태 등과 같은 문제점을 제보할 안내판 관리 주체 및 연락처가 없었습니다. 지적했던 내용들이 하루빨리 개선될 수 있도록 유적지 관리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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