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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1) 제주다크투어는 남원 지역에 있는 4·3 유적지들을 방문했습니다. 2월 23일에 진행할 예정인 '4·3, 산전 길을 걷다' 일일기행의 답사차 방문이었지요. 원래는 이덕구 산전도 방문하려 했으나 전날 내린 눈때문에 산전은 아쉽게도 방문하지 못했어요.

남원은 4·3을 기억하는 세 가지 다른 방식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토벌대들의 무덤이 있는 남원읍 충혼묘지, 의귀리 마을 주민들이 묻혀있는 현의합장묘, 그리고 무장대들의 시신이 묻혀있는 송령이골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곳이지요.

남원읍 충혼묘지
남원읍 충혼묘지

첫 번째 도착한 장소는 남원읍 충혼묘지입니다. 4·3 당시 애국단원, 민보단, 자경대, 군인 등으로 활동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 베트남 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 6.25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 등 총 251기가 모셔져 있습니다. 어떤 비석에는 '한라산 공비 소탕작전 중 순직'이라고도 적혀있습니다. 마을에 세워졌던 비석들을 이 곳에 가져다 놓기도 했습니다. 벌초도 깨끗하게 잘 되어 있고 비석도 번듯하게 잘 세워져 있습니다. 1991년에 만들어진 충혼묘지 입니다. 제주에는 이런 충혼묘지가 마을 곳곳에 있지요.

사리물궤
사리물궤

사리물궤. 이 주변에는 크고 작은 궤(동굴)들이 여럿 보입니다.

발걸음을 돌려 충혼묘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리물궤를 찾습니다. 쌩쌩 차들이 달리는 도로 옆,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상입니다. 안내표시 하나 없는 풀숲 사이를 들어서 작은 하천을 지나면 4·3당시 수망리 사람들이 숨어살았던 사리물궤가 나옵니다. 얕은 동굴이라 주민들이 오래 숨어살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곳에 있던 주민 11명은 1948년 11월 29일에 토벌대에 의해 현장에서 희생당했습니다. 이 곳에서 죽은 아이들이 많아 '아이몬죽은궤'라는 이름도 있다고 하지만 실제 아이들이 많이 희생당했는지 그 증거는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영령들을 생각하며 향을 피우고 술을 올렸습니다
영령들을 생각하며 향을 피우고 술을 올렸습니다

마침 내일 모레면 구정 새해입니다. 돌아가신 영령들을 생각하며 조촐하게 가져온 술과 귤을 꺼내듭니다. 조심스레 향을 피우고 이 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찾아주는 이 없어 외로우시진 않을까, 이유없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버려 억울하다는 김경훈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남원은 의귀국민학교(현 의귀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의귀리 전투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1949년 1월 12일, 무장대는 의귀국민학교에 주둔하던 2연대 1대대 2중대 본부를 상대로 총력을 집중합니다. 무장대의 기습을 누군가 밀고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미리 준비하고 있던 토벌대에게 무장대는 큰 피해를 입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군인은 4명이 전사했지만 무장대원들은 51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의귀국민학교의 현재 모습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의귀국민학교의 현재 모습

군인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의귀국민학교에 수용 중이던 80여명의 주민들을 학교 동녘밭에서 학살합니다. 유족들은 그 시신을 찾지도 못하고 있다가 1년 후인 1950년 마을 재건 때 경찰의 눈을 피해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경찰의 명령에 따라 민보단원들이 그 시신들을 들것에 실어 와 구덩이 세 개를 파고 아무렇게나 매장했습니다. 바로 현의합장묘 옛터의 이야기입니다.

현의합장묘 옛터
현의합장묘 옛터

이후 1976년, 이 곳에 가족들이 묻혀있다고 믿은 유족들은 '삼묘동친회'를 결성했습니다. 세 무덤에 묻힌 후손들은 같은 친척이라는 뜻이지요. 대정에 있는 백조일손지지와 비슷한 무덤입니다. 2003년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현의합장묘는 유해발굴을 한 후 새로운 묘역으로 옮겨갑니다. 여전히 시신을 확인할 길은 없어 똑같이 3개의 봉분에 함께 모셨지만 그래도 이제는 벌초도 잘 되어있고 현의합장묘의 내용을 알리는 전시관도 옆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날이 오기까지 삼묘동친회 유족들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지 차마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현의합장묘로 걸어가는 길
현의합장묘로 걸어가는 길

의귀국민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가 근처 송령이골에 방치되었습니다. 최근까지도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었다가 2004년, 도법스님을 단장으로 하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이 곳을 방문해 표지판을 세우고 천도제를 지냈습니다. 이후 매년 8월 15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송령이골 벌초를 함께 합니다. 작년에는 제주다크투어도 송령이골 벌초에 참가 했었지요.

송령이골 전경. 지금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습니다.
송령이골 전경. 지금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습니다.

이번 답사를 바탕으로 2월 23일에는 김경훈 시인과 함께 하는 '4·3 산전길을 걷다' 기행이 준비될 예정입니다. 곧 참가신청을 받을 예정이니 다들 기대하고 기다려주세요!

일일 기행 프로그램 - 4·3 항쟁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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