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지난 7월 11일(월), 4·3평화공원에서 개최중인 '다랑쉬 30' 특별전에 다녀왔습니다. 다랑쉬굴 유해발굴 30주년을 맞아 개최된 특별전은 올해 4월 11일부터 오는 9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다랑쉬굴은 4·3사건 당시인 1948년 12월 18일,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몰살당한 장소입니다. 다랑쉬굴은 4·3으로부터 44년이 지난 1992년이 되어서야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92년 다랑쉬굴의 발굴은 4·3학살 피해의 진실을 보여주는 '역사의 쇠망치'같은 것이었습니다. 다랑쉬굴의 충격적인 장면은 제주도를 넘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러나 44년이 지나 겨우 동굴 밖으로 나온 희생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경찰과 행정기관의 역사왜곡이었습니다. 다랑쉬굴은 군경토벌대에 의해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다는 분명한 증거였기에 경찰, 행정기관에서는 이를 빠른 시간내에 묻어버리려 하였습니다. 이들은 다랑쉬굴의 유해를 집단자살이라 발표하거나, 세화리를 습격한 남로당의 비밀아지트라고 몰아가는 등 진실을 왜곡하려 하였습니다.
거기에 희생자들의 유해는 유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유족들은 유해를 합동묘역에 안장하기를 희망했으나, 고위 권력의 입김이 작용하여 유해를 화장하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심지어는 유해가루 한 줌이라도 주면 묘라도 조성하겠다는 유족의 의견마저 거부당했습니다.
다랑쉬굴의 입구는 시멘트로 봉해지고, 접근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둘렀으며, 수습된 유해마저 일반적인 매장이 아니라 화장해 바다에 뿌려버렸습니다. 이는 4·3 진상규명의 싹을 애초부터 지우려 했던 당시 정부와 기득권세력의 의도와 공작의 결과였습니다. 특별전 '다랑쉬 30'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다랑쉬굴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습니다.
1부 '다랑쉬 30'에서는 '언론이 본 다랑쉬굴'을 다루고 있습니다. 4·3사건의 전개과정과 다랑쉬굴 유해 발견 관련 언론 보도 자료와 방송자료, 2002년 10주년 당시 인터뷰 영상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다랑쉬굴의 피신 그리고 학살, 다랑쉬굴 유해발견, 봉인된 다랑쉬굴, 다시 보는 다랑쉬굴 유해발굴 10주년 등 시간순서로 신문기사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시관의 처음과 끝에는 다랑쉬굴 다큐멘터리와 발굴 당시 촬영된 영상이 재생중입니다.
2부는 '김기삼의 다랑쉬굴 1992'입니다. 2부에서는 구좌읍 4·3 조사단의 일원으로 최초로 다랑쉬굴 현장을 발견한 사진작가 '김기삼' 선생님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다랑쉬굴 발견부터 유해가 재가 돼 바다에 뿌려지는 과정이 사진에 담겨 있습니다. 유해와 일본제 군화 등 개인 소지품, 굴 내부의 모습과 서둘러 치러진 장례식 모습 또한 전시됩니다.
1948년 12월 18일, 다랑쉬굴에서는 20명의 주민들이 토벌대가 피운 연기에 질식돼 처참하게 희생됐습니다. 그러부터 44년이 지난 1992년 4월 다랑쉬굴에 남아있던 열한 분의 유해가 발굴되었지만, 정보기관과 행정당국에 의해 불태워지고 바다에 수장됐습니다. 30년 전 우리는 4·3의 참혹함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목도했습니다.- '다랑쉬 30' 인사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고희범
다랑쉬굴은 74년 전 학살이 자행된 날부터, 수십 년이 흘러 유해가 발굴돼 희생자들이 졸속으로 화장되어 처리되는 과정까지 4·3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랑쉬굴의 발견은 4·3 진상규명운동이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나, 정작 다랑쉬굴의 희생자들은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바다에 뿌려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다랑쉬굴을 기억하며 4·3의 진상을 규명하고 4·3영령들이 죽어서도 다시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랑쉬30' 특별전은 올해 9월 30일까지 제주4·3평화기념관 2층 전관에서 개최됩니다. 제주4·3의 역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방문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