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협동조합 강원피스투어의 초청으로 지난 7월 9일부터 7월 11일까지 강원도 일대 DMZ펀치볼 둘레길 등을 둘러보는 평화기행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기지개를 켠 강원피스투어는 강원도에 있는 한국전쟁 전적지 등을 돌아보며 평화와 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행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문을 열었습니다. 이번 기행은 햇수로 운영 3년 차에 접어든 제주다크투어가 강원피스투어의 평화기행을 직접 체험해보고 의견을 드리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강원도 양구와 화천군은 곳곳에 한국전쟁 전적지와 전쟁기념관 등의 구조물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군부대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강변 공원 주차장에 전시되어 있는 장갑차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군사적으로 긴장 상태에 있는 접경 지역의 일상적 풍경이겠지요. 이른바 ‘안보 기행’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전쟁에 대한 성찰적 해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전무한 상태라고 합니다. 앞으로 강원피스투어가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행 첫날, 제주다크투어와 강원피스투어는 여러 여러 중간지원조직과 사회혁신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사회혁신센터 커먼즈필드 춘천에서 MOU(양해각서)를 맺었습니다. 서로의 발전을 위한 교류의 첫 물꼬를 튼 것이지요. 이어 강원피스투어 이기찬 대표님께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강원피스투어의 청사진에 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대표님은 다른 지역의 관광지처럼 조성된 DMZ가 아니라, 강원도에서만 볼 수 있는 그대로의 ‘깡DMZ’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아마도 참가자들에게 ‘진짜 전쟁’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드리고 싶으신 거겠죠. 강원피스투어의 당찬 포부에 덩달아 가슴이 뛰었습니다.
둘째 날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기행의 첫 행선지는 양구 DMZ펀치볼 둘레길이었습니다. ‘펀치볼’은 여러 산이 둥그렇게 자리해 분지를 형성한 지형입니다. 가운데에는 양구 해안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펀치볼’이라는 명칭은 한국전쟁 당시 한 종군기자가 지형을 보고 펀치라는 칵테일을 담은 그릇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었다고 합니다. 해안면이라는 이름이 더 정감 있고 좋은데 영어 이름이 더 익숙하게 남아있는 모습입니다.
펀치볼 둘레길은 10~20km 길이의 4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식 코스가 아니라 20분 정도면 정산에 닿을 수 있는 짧은 코스를 탔습니다. 동행한 해설사님은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고지 탈환을 위한 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졌다는 전쟁사를 들려주셨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이주민들이 지뢰를 밟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지금의 펀치볼을 일궈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외에도 자생 동·식물, 지질환경, 지역 특산물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을 오르면 산꼭대기에 있는 ‘부부 소나무 전망대’에 다다릅니다. 눈 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 앞에 여러 산 위로 하얗게 그어진 선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최전방 GOP 철책 뒷편의 군 보급로입니다. 이날은 날씨가 흐려 직접 눈에 담지는 못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돋아난 전쟁의 흔적에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양구 전쟁기념관에도 들렀습니다. 말 그대로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었습니다. 양구에서 있었던 고지 쟁탈전에 대한 설명과 한국전쟁의 흐름 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북한군이 화면에 나타나면 장난감 총으로 사격을 하는 체험시설도 있었다고 하는데, 작년부터 운영을 중지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총을 거치했던 기둥 2개와 동전을 넣었던 기계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전쟁이 가져다주는 끔찍한 결과 대신 국가에 대한 충성과 희생정신만이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평화의 댐에도 다녀왔습니다. 평화의 댐은 1980년대 후반 북한의 수공(水攻)에 대비하게 지어진 댐이라고 합니다. 전두환 정부 시기에 ‘서울 물바다론’을 내세우며 착공 2년 만에 지어졌지만, 지금은 당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여론을 돌리기 위해 댐을 건설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댐은 1차 완공 이후 30년째 담수율이 1%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실상 댐의 기능은 하고 있지 않은 것이죠. 수천억 원의 세금을 허투루 쓴 격입니다. 현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의 평화 무드에 맞춰 이곳을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댐 사면에 세계 최대 규모의 트릭아트가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기행 참가자들은 워터 슬라이딩 시설을 만들자, 암벽 등반 코스를 조성하면 성공할 것이다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습니다.
아 참! 평화의 댐에 물이 갇히면서 댐 상류에 우연하게도 습지가 조성됐다고 합니다. 아마 평화의 댐의 유일한 순기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름하여 ‘양의대 습지’! 지금은 담당 관청에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번엔 꼭 가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에도 다녀왔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우리나라 장병들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앞서갔던 양구 전쟁기념관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파병 이유, 전쟁에서 쌓은 전공, 파병 이후에 얻게 된 국가 원조 등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장병들이 자행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 게릴라전의 무대였던 땅굴을 조성해 놓은 시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두컴컴한 굴 밖으로 나오자 입구에는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국군 모형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평화를 위해 총구에 꽃을 꽂아 선물하고 왔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돌아본 강원도는 제주와 닮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이면에 서려 있는 아픈 역사가 그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평화의 정신으로 승화할 것인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겠지요. 제주다크투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더 깊게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인권과 평화가 살아 숨 쉬는 사회를 위해 제주다크투어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강원피스투어의 앞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