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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말] 이 후기는 (사)제주다크투어가 진행 중인 화산도 강독모임의 일환으로 마련된 '화산도로 읽는 제주4·3과 여성' 강연을 듣고 활동가가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번 강연은 강독모임 회원이자 오랜 시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활동하신 고명희 전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님이 강사를 맡아주셨습니다.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러 시각 중 하나인 '젠더'라는 관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화산도전 프리젠테이션 배경화면입니다

(사)제주다크투어는 지난 11월 17일 오후 7시 제주시 오라1동 마을회관 별관에서 『화산도』 강독모임 '화산도전'의 일환으로 '화산도로 읽는 제주4·3과 여성'을 주제로 고명희 전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님(이하 강사)을 강사로 모시고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화산도』는 4·3 발발 직전인 1948년 2월부터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잠잠해지는 이듬해 6월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작품은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4·3의 전개 과정 등 당시 제주의 상황은 물론, 격동의 시기 한반도와 일본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까지 아우릅니다.

이 작품은 총 12권 분량의 대략으로 집필 기간만 장장 22년에 달했다고 합니다. 김석범 선생님은 지난 2015년에 제정된 제주4·3평화상의 초대 수상자이기도 하십니다.

고명희 강사는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이 시간이 화산도에 대한 가치 평가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작품, 더 나아가 세상을 보는 다른 관점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리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젠더'와 '페미니즘'에 관한 개념에 대해 정리해주었는데요.

'젠더'는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도구 중 하나이며, '페미니즘'은 젠더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식 체계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고명희 강사님이 '화산도로 읽는 제주4·3과 여성' 강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명희 강사님이 '화산도로 읽는 제주4·3과 여성' 강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4·3 전개 과정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화산도 작품 내에서는 여성들은 주로 물자를 나르는 운반책 혹은 망을 보는 역할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고명희 강사는 이에 대해 여성이 보조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각자의 역할에 대해 세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경험적 측면에서 각 역할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로써 4·3 안에서의 여성이 갖는 주체성에 대해 고찰해 봐야 한다는 것이죠.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폭력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4·3은 국가폭력입니다. 그러나 여성이었기 때문에 겪었던 폭력은 '젠더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 진상 규명 과정에서 여성이 겪은 '젠더폭력'도 '국가폭력'으로 환원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의 묵인은 여성의 '젠더폭력'을 비가시화하는 데 일조했다고 합니다. 여성이 당한 폭력은 공동체를 위한 '희생'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강사는 '희생'과 '폭력'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벡델 테스트 문항.
벡델 테스트 문항. 오른쪽은 우리나라에서 더욱 세분화된 문항.(자료 제공= 고명희)

벡델 테스트라는 지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어떠한 작품이 얼마나 성평등한 작품인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인데요. 물론 이 테스트가 절대적인 가치 판단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고로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요. 다만, 어떤 작품이 젠더의 관점에서 성평등한 작품인지, 아닌지를 가름해 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벡델 테스트 통과 기준은 총 세 가지.

①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할 것
②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③남성과 관련되지 않은 대화 내용이 있을 것

화산도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여러 명 나옵니다. 첫 번째 기준 통과.

그러나 두 번째 기준부터가 문제였습니다.

놀랍게도 작품 속에서 여성인 인물 사이에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읽었던 기억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작중 절친인 이유원과 유영하가 대화를 나눌 때도 중간에 남성 주인공인 이방근이 끼어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시각에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고명희 강사는 수십 년 전에 쓰인 이 화산도에 등장하는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에 대해서도 주목했습니다. 이른바 스테레오 타입이 아닌 여성들인데요. 지식인 신여성을 상징하는 이유원을 비롯해 인민유격대의 활동을 지원하는 부엌이, 우익 세력에 동조하는 문난설. 이들은 작품 내에서 각자 삶의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화산도』로 읽는 제주4·3과 여성 강연 현장.
『화산도』로 읽는 제주4·3과 여성 강연 현장.

끝으로 고명희 강사는 자신의 가족이 실제로 겪은 4·3 속에서 여성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말해주셨습니다. 남성이 대부분 죽어 없어진 곳에서, 살아남은 여성은 피해를 수습하고 삶을 이어가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강연을 들은 분들은 대부분 기성세대였습니다. 많은 분이 불편함도 느끼셨겠죠.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질의응답 시간에 나왔습니다. '젠더'에 관한 논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급진적'인 이야기에 속하니까요. 그럼에도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이번 후기는 참가자분이 현장에서 했던 발언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이런 얘기를 나누는 것에 대해 나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불편함을 느낀다는 건 변화되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화산도』로 읽는 제주4·3과 여성 강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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