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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아흔아홉골의 줄기가 어우러져 내린 곳에 위치한 노형동은 7개 자연마을(원노형, 월랑, 정존, 광평, 월산, 해안, 신비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로부터 사회 각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선도하는 인물들을 배출한 유림의 고장이다.(참조: 제주시홈페이지) 제주시 노형동은 현재 제주시 읍면동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지금은 각종 상업시설과 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는 제주도 도내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이지만, 74년 전 노형리는 제주4·3의 광풍을 가장 참혹하게 겪었다.

1948년 11월 중순,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해안선 5km 이외의 중산간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초토화작전’이 전개되었다. 토벌대는 중산간 마을을 덮쳐 가옥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노형리 또한 해발 200고지 중산간에 위치한 마을로 초토화작전의 대상이 되었다. 이 시기를 다룬 주한미군사령부의 보고서를 보면 노형동이 언급되는데, “11월 24일 제주읍 노형리 부근의 전투에서 유격대 79명 사살(주한미군사령부 「G-2 일일보고서」, 1948. 11. 27. 참)” 등 전과기록이 나오는데 토벌대 희생자는 한 명도 없다. 거기에 노획한 무기조차 없다. 이는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교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가항력의 주민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되었음을 말해준다.

1948년 11월 19일, 토벌대가 노형리를 방화하면서 닥치는 대로 총살극을 벌였다. 살아남는 사람들은 토벌대의 소개 명령에 따라 아랫마을인 이호2구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내려갔던 소개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또 다른 학살이었다. 12월, 토벌대가 이호 ‘호병밧’ 등지에서 노형, 광령, 이호 소개민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연일 벌어졌다. 주민들은 학살을 피해 대거 입산하였다가, 귀순권유 삐라를 보고 하산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입산자’라는 꼬리표가 평생 남게 되었고, 일부는 한국전쟁 때 예비검속으로 희생되기도 하였다.(「4·3은 말한다」1999.06.18. 제447회 연재 참조) 2021년 6월까지 희생자로 신고되어 인정된 노형리의 4·3 희생자는 541명으로, 이는 제주도 전체의 마을을 통틀어서도 가장 많은 숫자이다.(제주4·3아카이브 참조) 제주4·3 하면 떠오르는 북촌리보다도 많은 사람이 4·3 때 동안 목숨을 잃은 것이다.

현재 노형동에는 4·3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 도시개발로 빌딩과 도로가 들어서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의 ‘노형초등학교’가 있는 자리는 4·3 당시 노형마을 주민들을 모아 오랫동안 전략촌으로 운영되었던 ‘정존마을 4·3성’의 동쪽 기점이 있던 자리이다. 정존마을 성에는 월랑, 정존, 광평, 월산마을 사람들이 마을별로 네 구역으로 나눠 살았으며, 성 가운데에는 경찰출장소도 설치되어 경찰이 주둔하였다. 노형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몇 년간 함바집을 만들어 살다가 자기 마을로 돌아갔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6월 27일쯤에 성담 외곽에 ‘인민공화국 만세’라는 삐라가 붙어 청년들이 예비검속으로 끌려가 학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경찰이 스스로 삐라를 만들어 붙인 후 이를 빌미로 청년들을 끌고 갔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4·3은 말한다」1999.06.18. 제447회 연재 참조) 4·3 이후 주민들이 집 축담, 밭담 등으로 이용해 지금은 성담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그 자리에는 주택과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정존 4·3성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정존마을 입구 설촌 유래에 언급된 내용이 전부이다.

정존마을 4·3성이 있었던 노형초등학교 담장. 제주다크투어 제공(2022.11.07. 촬영)
정존마을 4·3성이 있었던 노형초등학교 담장. 제주다크투어 제공(2022.11.07. 촬영)

노형동은 지역이 넓고 피해가 컸던 만큼 잃어버린 마을도 많다. 드르구릉, 개아진이, 함박이굴, 방일이, 벳밭 등 많은 마을이 4·3으로 불타버려 재건되지 못하고 폐촌이 되었다. 현재는 드르구릉 터 앞에 2001년 세워진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있을 뿐이다. 다른 잃어버린 마을 터는 과수원이나 주택지로 쓰이고 있다. 함박이굴은 관광지로 유명한 식당이 운영되고 있으나, 잃어버린 마을 터에 으레 남아 있곤 하는 대나무숲조차 없어 이곳이 잃어버린 마을 터라는 사실은 전혀 알 수 없다. 함박이굴을 비롯한 노형동의 잃어버린 마을은 주로 월산마을 위쪽에 있는데, 현재 이 근방은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다.

노형리의 잃어버린 마을 함박이굴 터. 공사가 진행중이다.제주다크투어 제공(2022.11.07. 촬영)
노형리의 잃어버린 마을 함박이굴 터. 공사가 진행중이다.제주다크투어 제공(2022.11.07. 촬영)

노형동은 제주도의 도심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손꼽히는 부촌이다. 인구·관광·서비스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노형동. 그러나 노형동의 고층빌딩 숲 사이에는 제주4·3의 아픔이 숨겨진 채로 잊혀가고 있다. 노형동의 고층빌딩들이 세워진 흙에는 4·3으로 불타버린 옛 노형리의 잿더미가 섞여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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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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