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귀중학원 옛터
유적지 개요
하귀중학원은 해방기에 설립된 대표적인 제주의 중등교육기관 중 한 곳이다. 하귀중학원은 해방 후 제주에서 마을마다 학교 설립 운동이 한창이던 1945년 10월 15일에 주민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하귀리는 조천지역과 더불어 일제시기 항일운동가를 많이 배출하고 왕성하게 항일운동을 벌였던 마을이다.
하귀중학원은 11월 18일 미군정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원생 50여 명을 모집해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8~9명의 교사들이 국어, 공민, 수학, 역사, 위생 등의 수업을 했다. 수업은 대학 강의에 버금갈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설립 당시 교실은 1구 공회당(하귀1리 549-1번지)을 사용했고, 학생이 늘어나자 교실이 모자랐고 2학년 학생들은 미수동 공회당(현 영광교회, 애월읍 하귀로 59-1)에서 수업을 받았다. 학교 설립의 중심적인 인물은 서울 휘문고보 출신의 고창옥 하귀중학원장이었다. 진보적 인사인 고창옥은 해방 전후 마을 구장으로 애월면 인민위원회의 간부를 맡기도 했다.
하귀중학원생들은 4·3의 직접적인 도화선으로 평가받는 1947년 3·1절 기념식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경찰의 발포로 시민들이 숨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에 대응해 전도적으로 3·10 총파업이 전개되는데 하귀중학원도 이에 동참한다. 미군정은 총파업 사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이때 하귀중학원생 대부분이 제주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했다. 4·3 와중에는 하귀중학원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잡혀가 죽거나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학생들은 쫓기는 신세가 되거나 산으로 올라 무장대 활동을 하기도 했다.
미군정의 탄압으로 학교 사정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조정구라는 사람이 내려와 하귀중학원을 인수해 4·3 발발 전후에 단국중학원으로 학교명을 개칭해 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미군정의 검거와 탄압은 계속되었고 결국 4·3 발발 후 10월~11월경에 단국중학교는 폐교되었다. 현재 하귀중학원 2학년 교실 옛터에는 교회가 들어섰고, 1학년 교실 옛터는 상가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안내판은 모두 세워져 있지 않다. 하귀중학원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해방 후 전도적으로 열린 1947년 3·1절 기념대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당시 제주도민들이 역사를 추동하는 주체로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설치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2003
- 『제주4·3 유적』Ⅰ(개정증보판), 제주도·제주4·3연구소, 2018
- 논문 『제주도 하귀마을의 4·3 경험과 치유과정 연구 』, 하명실, 2017
유적지 정보
- category지역 구분 제주시 서부권
- gps_fixed유적지 위도 33.480903
- gps_fixed유적지 경도 126.403409
- pin_drop유적지 주소 1학년 교실: 제주시 하귀1리 549-1 / 2학년 교실: 제주시 하귀2리 1715-1
유적지 사진
하귀중학원 2학년 교실 옛터 입구 (2021년 6월 7일 촬영)
하귀중학원 2학년 교실 옛터 (2021년 6월 7일 촬영)
하귀중학원 2학년 교실 옛터 입구 (2021년 6월 7일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