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농업학교 옛터
유적지 개요
제주농업학교 옛터는 해방 전후 혼란의 제주 현대사가 응축된 곳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벚꽃 축제로 유명한 제주시 '전농(典農)’로 라는 도로명도 바로 근처가 제주농업학교 터라서 만들어졌다.
제주농업학교는 1907년 7월 1일 제주군수 윤원구가 지방 유지와 군민들의 성금을 모아 설립한 사립의신학교로 태동했다. 사립의신학교는 지금의 오현단 부지에 세워졌다. 1940년 5월 26일 오현단 부지(제주시 이도리 1437)에서 제주시 삼도2동 238번지 일대에 구 학생회관 일대에서 도남오거리 인근에 약 6만여평에 이르는 부지로 자리를 옮겼다.
제주농업학교는 당 도내의 인재들이 몰려들었던 유일한 근대 교육기관이었다. 일제시대에는 일제에 항거한 학생운동이 전개됐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점령정책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이 거셌던 곳이다. 특히 양과자 반대투쟁 등 미군정에 대항하는 운동을 주도했고, 1947년 3․1 시위에도 이 학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일제 말기 이곳은 일본군 주둔지로 쓰이기도 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8일에는 일본군의 항복절차가 이곳 제주농업학교에서 진행됐고 학교 내에 미59군정 중대본부가 설치됐다. 한국전쟁 때에는 해병대사령부, 신병훈련소 등으로 학교 운동장과 교실이 쓰이기도 했다. 앞서 1945년 9월 10일에는 제주도건국준비위원회(위원장 오대진) 결성식이 이곳에서 열리며 해방 직후 민중자치운동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건국노선과 신탁 통치 등 좌익과 우익의 대립은 제주농업학교 학내에도 영향을 미쳐 교사와 학생간, 학생과 학생간 테러가 속출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4·3이 발발하면서 이곳에는 제9연대를 시작으로 11연대(1948년 5월), 2연대(1948년 12월) 등의 사령부가 줄줄이 자리잡았다. 특히 군 토벌대가 이 곳에 주둔하면서 도내의 유지들과 지식인, 그리고 자수자와 체포자 등 제주도민들이 잡혀와 고문과 취조를 당한 후 처형되거나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기 전 거쳤던 곳이다.
1946년 9월 제주공립농업중학교로 학제가 개편되면서 학교 부지는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초급대학(현재 제주대학교), 제주중앙중학교 등의 교지로 분리됐다. 이에 따라 6만평에 달했던 교지는 2만 7694평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도로계획으로 학교부지가 도로로 사용되기도 했다. 제주농업학교(현 제주고등학교)는 1976년 3월 1일 현재의 노형동 607번지로 이설됐다.
출처 : 4·3아카이브 제주농업학교 옛터, 제주고 100년사(Ⅰ)①
유적지 정보
- category지역 구분 제주시권
- gps_fixed유적지 위도 33.5040833333333
- gps_fixed유적지 경도 126.523805555556
- pin_drop유적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305-4번지 일대
- directions_walk찾아가는 방법 제주시외버스터미널 : 버스(440) 탑승-제주중앙여자중학교 정류장 하차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 : 버스(281) 탑승-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정류장 하차
유적지 사진
제주농업학교 운동장에서 귀순자 가운데 무장대 협력자를 가려내는 심문반(1949년 4월, 4·3아카이브)
제주농업학교 천막수용소(4·3아카이브)
제주농업학교에 설치된 미59군정중대 본부.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1948년 5월, 4·3아카이브)
제주농업학교에 주둔한 미군(4·3아카이브)
제주농업학교 옛터였던 제주시 전농로(前農路, 2019년 5월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