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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개요

제주도를 찾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제주국제공항은 제주4·3 당시 최대 민간인 학살터 중 한 곳이다. 이 공항은 1940년대 초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군사적인 목적으로 처음 개항됐다. ‘정뜨르 비행장’이라고 불렸던 개항 당시에는 도두봉 가까이 있는 활주로 부근에 작은 군용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시설이 전부였다. 1957년 활주로를 증설하며 민간항공기가 정기 취항하기 시작했고, 1982년에 확장공사로 국제공항으로서의 규모를 갖추게 됐다.

제주국제공항은 제주4·3 당시 최소 700여 명이 학살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직도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활주로 밑에 당시 희생된 유해가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토벌대는 무장대(인민유격대)와 협력했다는 구실을 들어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다. 이곳에서 벌어진 학살은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규모나 시기 등의 파악이 어렵다. 그럼에도 증언 등을 통해 드러난 내용을 살펴보면, 1949년 10월 2일 제2차 군법회의(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주민 249명이 집단학살되었다. 4·3 당시 제주에서는 크게 두 시기에 걸쳐 군법회의가 진행됐다. 후에 이 재판들은 최소한의 법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엉터리 재판임이 밝혀졌다. 2018년부터 당시 군법회의로 수형인이 된 사람들에 대한 재심 재판이 이뤄지고 있으며, 모두 공소기각 및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예비검속에서도 무려 500명가량의 주민이 이곳에서 학살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토벌대는 예비검속으로 제주경찰서와 제주항 인근 주정공장에 구금되어 있던 주민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학살했다. 희생자들은 제주경찰서 관할지역인 제주읍, 조천면, 애월면 지역의 예비검속자들이다. 그리고 서귀포경찰서와 모슬포경찰서 관할지역 예비검속자 중 일부도 이곳에서 학살되었다.

이후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이곳에서 유해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학살이 자행된 지 60년가량이 흐른 뒤 이뤄진 조사였다. 당시 조사를 통해 공항 서북측과 동북측에서 총 380여 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130여 구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2018년에도 제주공항 인근 도두봉 근처에서 4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전문가들은 도두봉 근처에서 발견된 시신 4구가 1970년대 공항 확장 공사 중 수습되어 이곳에 묻힌 것이라 보고 있다. 한편, 제주국제공항 내에는 아직도 많은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해 발굴은 안전상의 문제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출처

  •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2003
  • 『제주4·3 유적』Ⅰ(개정증보판), 제주도·제주4·3연구소, 2018
  • 4.3아카이브

유적지 정보

  • 지역 구분 제주시권
  • 유적지 위도 33.511215
  • 유적지 경도 126.491202
  • 유적지 주소 제주시 공항로 2 (제주시 용담동, 도두동 일대)

유적지 사진

공항동산(혹은 매동산: 제주시 용담3동 2180-2번지 일대)에서 공항 활주로가 한 눈에 보인다.

공항동산(혹은 매동산: 제주시 용담3동 2180-2번지 일대)에서 공항 활주로가 한 눈에 보인다.

제주국제공항 지적도

제주국제공항 지적도

제주국제공항 (정뜨르 비행장) 활주로

제주국제공항 (정뜨르 비행장) 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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