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역사현장
석구왓궤(동회천)
역사현장 개요
역사문화지에 따르면, 석구왓궤는 동회천 마을 사람들이 4·3 초기부터 일상적인 은신처였다. 굴은 윗굴과 아랫굴로 되어있데, 입구는 작지만 들어가면 방 하나 정도의 넓은 공간이 있었다. 윗굴에는 주로 소년들이 은신했고, 아랫굴에는 어른들이 숨었다. 1948년 12월 1일, 석구왓궤가 토벌대에 발각되어 숨어있던 7명은 굴에서 질식사하였다. 굴에서 나오라는 토벌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굴 입구에 불을 지른 것이다. 굴 밖으로 나온 강규환(24), 김평휘(24) 등 나머지 15명은 9연대가 주둔해 있던 함덕으로 끌려가 함덕해수욕장에서 총살되었다. 3개소에 걸쳐 있었던 석구왓궤는 주변이 감귤과수원으로 개간되면서 매립됐다. 이곳의 팽나무 아래에도 궤가 있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메꾸어져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문화원연합회, 「봉개동 역사문화지」 , 제주:일신옵셋인쇄사, 2021, 157-158쪽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연구소. 2021. 「제주4·3유적 Ⅰ」: 제주시편. 제주: 도서출판 각, 307쪽
역사현장 정보
- category지역 구분 제주시권
- gps_fixed위도 33.500811
- gps_fixed경도 126.619037
- pin_drop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동회천1길 56 일대
- directions_walk찾아가는 방법 예천노인전문요양원 앞 삼거리에서 동회천1길로 접어들면 좌측에 신축 건물이 보인다. 그 건물 뒷편에 팽나무와 그 아래 궤의 입구 중 하나가 있었다.
역사현장 사진
석구왓궤 터. (2022.06.22. 촬영)
팽나무 아래 매몰된 곳. 석구왓궤 입구로 추정됨 (2022.06.22. 촬영)
이제는 팽나무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건물 공사로 안내판마저 치워진 모습 (2026.02.12.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