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역사현장
머흘왓동산
유적지 개요
제민일보 4·3취재반에 따르면, 1948년 10월 말 경비대 9연대장 송요찬은 제주읍에 1대대를 배치하여 토벌작전을 진행했고, 이때부터 화북리·봉개리·회천리·용강리 주민들이 연거푸 희생됐다. 그 당시 머흘왓동산은 지대가 높아 당시 빗개들이 토벌대가 마을로 진입하면 신호를 보내 주민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하던 곳이다.
이렇게 제주읍 중산간 마을들에 대한 군경 토별대의 토벌작전이 시작된 이후에 일부 주민들은 해안가 마을로 소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산에 숨거나, 불타버린 집 곁에 움막을 짓고 생활했다.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1949년 1월 17일(음 12.19.) 군‧경, 대한청년단으로 이루어진 토벌대가 봉개리에 들이닥쳐 움막에서 숨어 지내던 주민들을 붙잡아 머흘왓동산에서 집단 총살했다. 이들은 강좌민(58세, 남) 일가족 3명 등 40명에 달했다.
출처
제민일보 4·3취재반. 1997. <4·3은 말한다 4>: 초토화작전. 서울: 전예원. 103쪽, 337쪽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연구소. 2021. 「제주4·3유적 Ⅰ」: 제주시편. 제주: 도서출판 각. 284쪽
유적지 정보
- category지역 구분 제주시권
- gps_fixed유적지 위도 33.490447
- gps_fixed유적지 경도 126.595282
- pin_drop유적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1854-1
- directions_walk찾아가는 방법 실제로 봉개동 주민이 학살된 곳은 위 주소지 주변의 밭에서 발생했다. 주변 밭은 봉개동 1854-2, 1854-3, 1855 근처 번영로 일부를 포함한다.
유적지 사진
머흘왓동산의 과거 모습 (제주4·3연구소 2003, 204)
머흘왓동산의 현재 모습 (2022.12.02. 촬영)
학살터인 주변밭 중 현재 도로로 편입된 번영로 모습 (2026.02.12 촬영)
머흘왓동산 안내판 문구 (2026.02.12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