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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현장 개요

역사문화지에 따르면, 서회천 마을 북서쪽에 속한 마을이었다. 웃드르생이와 알드르생이가 있었으며, 광복 후까지도 드르생이글청이라는 서당도 있었다. 4‧3 당시 세대주로는 강운표, 강희수, 고성인, 고성주, 고택수(맨돈지), 고한경, 김경환, 김용태, 김학봉, 문태기, 이은계, 한계택, 한맹주, 한사택, 산성택 등이이었다.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이 마을은 1948년 11월 27일께 군‧경 토벌대에 초토화됐다. 드르생이에서 당시 강진석(54), 강동일(54) 고성인(26), 고경춘(60) 등 많은 주민이 희생됐다. 1953년에 들어서 회천리 재건이 허가됐지만 드르생이는 폐촌되었다.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문화원연합회, 「봉개동 역사문화지」 , 제주:일신옵셋인쇄사, 2021, 210쪽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연구소. 2021. 「제주4·3유적 Ⅰ」: 제주시편. 제주: 도서출판 각, 303쪽

역사현장 정보

  • 지역 구분 제주시권
  • 위도 33.50224
  • 경도 126.60107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회천동 2652~2654, 2692-1, 2694 일대

역사현장 사진

드르생이 집터 흔적. (2022.06.22. 촬영)

드르생이 집터 흔적. (2022.06.22. 촬영)

드르생이 집터 흔적. (2022.06.22. 촬영)

드르생이 집터 흔적. (2022.06.22. 촬영)

드르생이 안내판과 대나무숲 (2026.02.12. 촬영)

드르생이 안내판과 대나무숲 (2026.02.12.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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