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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오키나와 평화기행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이번 답사를 바탕으로 오키나와 평화기행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제주와 공통의 역사를 갖고 있는 오키나와 역사의 현장을 많은 분들과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기행으로 준비해 보겠습니다! 4박 5일간의 활동가들의 답사기를 공유합니다.
오키나와 답사 지도입니다

오키나와 평화기행 답사 지도

이 링크를 클릭하시면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이 방문한 답사지와 관련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이 오키나와에 머무르는 동안, 오키나와 모토부 켄켄에서는 오키나와 전쟁 당시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을 발굴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모토부정 켄켄의 유골을 고향에 돌려보내는 모임, (사)평화디딤돌, NPO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동아시아공동워크샵 실행위원회 등 일본, 대만, 한국의 청년들이 모여 유골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굴을 시작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도 오키나와 일정의 마지막을 유해발굴과 함께했습니다.

1945년 5월 미국 잡지 <라이프>에 실린 사진
1945년 5월 미국 잡지 <라이프>에 실린 사진

유해 발굴의 시작이 된 것은 미국 잡지 라이프지의 1945년 5월 28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저 멀리 세소코 섬이 보이는 사진에는 14명의 묘표(묘비의 한 종류)와 미군 병사가 찍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묘표에는 조선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 김만두씨와 명장모씨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라이프지에서 촬영한 곳으로 추정된 곳을 파내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라이프지에서 촬영한 곳으로 추정된 곳을 파내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945년 4월 1일부터 6월 23일까지 83일에 걸쳐 일어난 오키나와 전투. 오키나와 평화기념관에 기록되어 있는 사망자의 수만 해도 241,566명에 달합니다. 그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신은 82명, 대한민국 출신은 382명입니다. 일본 땅에 끌려왔을 때는 ‘조선’이라는 한 나라 국민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이름 아래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진에 나온 장소에 묻히신 분들은 오키나와 지상전이 일어나기 전인 1945년 2월 11일, 모토부정 도구치항에 정박해 있던 히코산마루가 미군의 공격으로 불타면서 희생된 분들로 보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7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유골을 발굴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작업이 시작 되었습니다.

한국, 대만, 일본 세 나라의 청년들이 모여 진행한 발굴 작업. 비록 언어는 잘 통하지 않지만, 돌아가신 분들을 반드시 찾아 고향으로 보내드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하루 종일 열심히 땅을 팝니다. 유해발굴에 처음 참가해 본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도 쉬지 않고 호미질을 합니다. 책에서 볼 때는 붓으로 뼈를 털어내던 사진만 보았는데 실제 유해발굴에 참가해보니 육체 노동의 강도가 만만치 않습니다. 구부정한 허리를 펼 시간도 없이 땅을 파고 양동이에 흙을 담아 나릅니다. 그 동안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및 강제동원된 조선인 유해 발굴 사업을 진행해 왔던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굴삭기로 흙어 퍼올린 곳을 참가자들이 호미로 일일이 파내었습니다
굴삭기로 흙어 퍼올린 곳을 참가자들이 호미로 일일이 파내었습니다

유해발굴은 총 3일 동안 진행되었지만 제주다크투어 팀은 일정 상 1.5일밖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간곡한 마음을 담아 유해발굴에 함께 했지만 안타깝게도 저희가 있던 기간 동안에는 유골이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동물뼈로 보이는 뼈, 기관총 탄두, 1970년~1980년대 맥주캔 등이 발견되었고 사람의 등뼈로 보이는 뼈도 3점 발견되었지만 당시 돌아가신 분의 뼈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희가 떠나온 후 동굴로 추정되는 곳을 드론으로 찾아내 소형 카메라를 넣어 촬영해 보니 팔뼈로도 보일 수 있는 나뭇가지 모양의 물체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유해발굴이라는 것은 기간을 정해 그 기간 동안 추정된 장소를 발굴해야 하는 작업으로 기한 없이 발굴을 진행할 수 없어 이번 발굴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후 뼈를 감식하는 작업, 유해발굴을 재개하는 여부 등은 추후 논의를 통해 결정될 것 같습니다.

암석 사이사이 굴삭기가 닿을 수 없는 곳을 참가자들이 파냈습니다
암석 사이사이 굴삭기가 닿을 수 없는 곳을 참가자들이 파냈습니다

유해발굴이라는 것은 현장에서의 발굴 작업 뿐만이 아니라 그 전후의 모든 과정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오래전 돌아가신 분의 유해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찾은 유골을 어떻게 가족에게 돌려보낼 것인가, 가족이 받기를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다양한 고민거리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시민을 지켜주지 않았던 군대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유해를 찾는 일에 국가는 나몰라라 하고, 시민들이 나서서 유해를 발굴해야 하는 현실이 75년 전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대체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묻게 됩니다. 군대로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오키나와는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주4.3을 기억하며 시민의 힘으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제주다크투어의 지향점을 오키나와 시민들이, 그리고 이번 유해발굴에 함께한 동아시아의 청년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도 동아시아 시민들의 연대로 만들어가는 평화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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